포스터만큼 웅장한 영화
몇 번을 볼까 말까 망설인 영화였습니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거대한 남자를 보며 범상치 않은 내용을 담은 영화겠구나 예상했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되기도 해서 영화를 보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지요. <더 웨일>은 2022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입니다. 장르는 드라마이고 큰 줄기는 삶과 죽음, 가족 간의 사랑과 화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엄청나게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전개되고 등장인물도 단출합니다. 주인공 찰리(브렌단 플레이저)는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문학을 가르칩니다. 그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리즈(홍 차우)는 매일 그를 찾아와 극진하게 보살핍니다.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찰리의 딸 엘리(세이디 싱크)는 그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저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입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을 사는 남자
첫 장면이 굉장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화면에서 모두거 화상 카메라를 켜고 있지만 강사인 찰리의 화면은 새까맣게 꺼져있습니다. 자신의 거대한 모습을 보여주면 행여 강의를 진행하는 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까 봐, 자신을 혐오할까 봐 학생들에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멈추지 않는 자기혐오는 그를 272kg이라는 거구로 만들었고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합니다. 아마 그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버린 것 같습니다. 당장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서 그는 여전히 피자를 먹고 콜라를 마시고 서랍 안에는 초콜릿이 가득합니다. 마치 자기 파괴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습니다. 그의 전담 간호사이자 친구인 리즈는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에 그는 언제나 그리웠던 딸 리즈를 집으로 부릅니다.
상처로 얼룩진 딸과 아빠
엘리는 반항적인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에게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그럴만한 게 찰리는 엘리가 8살 때 딸과 부인을 버린 남자입니다. 자신의 제자와 사랑에 빠져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 거죠.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와 말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문화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아마 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을 찾아와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작문 숙제도 도와주고 남겨둔 재산도 모두 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엘리는 매번 올 때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집을 방문합니다. 엘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너무하다 싶은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아빠인데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고 그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장면에서는 저도 화가 났습니다. 이를 알고 전부인 메리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리즈는 찰리의 답답한 행동에 화가 나서 뛰쳐나가기도 하고요.
마침내 구원을 받다
찰리가 병든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기 때문입니다. 찰리의 남자친구는 리즈의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종교에 몸 담았지만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종교와 가문에서 파문당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때문에 찰리는 종교에 부정적입니다. 자신을 찾아와 구원을 부르짖는 남자에게 구원 따윈 관심 없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찰리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전 부인인 메리와 울면서 지난날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도 마음이 찡했습니다. 마침내 찰리는 엘리의 작문 숙제를 완성해 줍니다. 하지만 엘리는 낙제를 당하고 다시 찰리에게 찾아와 폭언을 내뱉죠. 찰리는 그런 엘리를 다독이며 자신이 쓴 작문 내용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엘리는 그걸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칩니다. 찰리가 써 준 내용은 엘리 자신이 과거 썼던 독서감상문이었고 찰리는 그 내용을 매일 읽으며 엘리를 그리워하고 있던 겁니다. 마침내 두 부녀는 화해하며 영화 속에서 그토록 외치던 구원을 받는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많은 부분 공감이 가면서도 안타까운 영화였습니다. 찰리는 자신의 몸을 학대하면서도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모든 딸을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모습을 보며 그렇게 사랑하는 딸을 왜 진작 찾아가지 않았는지 답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딸과 아내를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묵직하게 울림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찰리가 먹고 마시는 건 그를 더 심각한 비만 환자로 몰고 갔지만 사실 현실에서 피자, 콜라만큼 끊을 수 없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를 가두는 것도 자유롭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