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이 올라서 보기 힘든 영화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후기들 많이 보셨을 겁니다. 저는 비교적 뒤늦게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2023년 12월 12일에 개봉한 <서울의 봄>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희대의 악인 보안사령관 전두광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헤어스타일 분장만 몇 시간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 인물과 너무도 유사도가 높아 한동안은 황정민만 보면 화가 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역사는 잘 몰랐던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많이 반성했고, 과거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미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시작합니다. 10월 26일 우리나라를 무려 18년 장기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이 총애하던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세상에는 민주화를 향한 분노 섞인 목소리가 치솟습니다. 이때 전두광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무시무시한 군사 반란을 준비합니다. 이 영화에는 실제 역사에서 현존하는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전두광에 대치되는 인물이자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인물인 이태신을 맡은 정우성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그는 군사 반란에 맞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 없는 인물입니다. 전두광의 오른팔이자 친구로서 그의 독재를 돕는 노태건을 연기한 박해준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국방부장관을 연기한 김의성 배우는 이번에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분노를 폭발하게 합니다. 나라가 한순간 전복되기 직전의 위기에서도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요리조리 잘도 도망 다닙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서울의 봄>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챕터로 구성되는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그 후 전두광이 권력을 잡는 이야기라면 제2막에서는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목표로 한 시시각각 촌각을 다투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감독은 한남동에 살 때 그 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총성과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참모총장,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 특전사령관 공수혁, 특전사 오진호 소령 등 다수의 악인들 속에서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소수의 의인들이 빛나는 영화입니다. 특히 특전사 오진호 소령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사 반란 무리들에게 포위당하기 직전 모두 피하라는 특전사령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는 외롭고 쓸쓸하게 특전사령관의 곁을 지킵니다. 그리고 의롭게 목숨을 다해 상관을 지킵니다. 그것이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오진호 소령의 미소 띤 마지막 말이 내내 슬프게 메아리쳤습니다. 혼자 계시면 적적할 거라고 말하는 모습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과연 오진호 소령처럼 할 수 있을까? 이태신 사령관처럼 소신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속에서 물음표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긴박하게 잘 짜인 이야기 전개 덕분에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시간 단위로 그려내는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 이태신 사령관은 전화기 앞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전화로 소리치고 절규하고 부탁하는 연기가 대부분인데요. 너무도 절박하게 느껴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었습니다. 전두광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보면서는 한심하면서도 악인들이 똘똘 뭉치면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 두려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화라서 더 아픈 영화
이러한 실화 바탕의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역사를 왜곡하거나 부풀려서는 안 되겠지요.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는 것에 바빠 외면하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 인식도 만행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 <서울의 봄>은 저에게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역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잊고 살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말로 고귀한 희생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의롭게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생을 마감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간은 화가 나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악인이 잘 사는 세상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바로잡아야 할 역사와 인물들이 많습니다. 부디 악인은 벌을 받고 의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