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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인 서울, 우리 연애할까?

by 희스토뤼 2024. 2. 25.

극과 극 남녀의 만남

며칠 전 본 영화 <더 랍스터>와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싱글 인 서울>은 싱글과 커플 모두를 존중하는 영화입니다. 영호(이동욱)은 혼자가 편한 남자입니다. 논술 강사로 일하면서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인플루언서입니다. 그는 혼자 놀고 보고 먹고 자고 모든 행위를 오롯이 혼자 즐기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는 자신의 현재에 전혀 불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혀 외롭지 않고 충분히 삶을 누리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반면 여주인공 현진(임수정)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녀는 어서 싱글라이프를 졸업하고 커플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연애를 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는 마주치는 모든 남자들이 연애 대상이지만 정작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 보입니다. 연애에 서툰 것이죠. 현진은 출판사 편집장입니다.

기억은 상대적이다

이 영화는 ‘싱글 인 더 시티’이라는 옴니버스 형태의 책을 출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책은 현진이 재직 중인 출판사에서 기획 중이었습니다. 세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혼자만의 생활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그런데 작가 한 명이 갑작스러운 이유로 작업을 할 수 없게 됐고 그 자리에 현진의 대학 선배인 영호가 참여하게 된 것이죠. 책을 기획하던 당시에는 영호와 현진은 혼자 사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달랐습니다. 현진은 ‘혼자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영호는 ‘혼자라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한 글자 차이인데 의미가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다가 현진은 영호의 첫사랑에 대해 물었고 영호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픈 첫사랑의 기억을 털어놓습니다. 영호가 말하는 기억은 누가 봐도 여자가 더 나쁜 사람입니다. 몇 번의 사랑을 겪으며 상처받은 결과 영호는 혼자가 더 낫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는 출판사에 들렀다가 <싱글 인 더 시티>에 함께 참여 중인 다른 여자 작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영호의 기억 속 나쁜 여자였던 첫사랑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자 역시 작가였고 같은 책의 저자로 참여 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 역시 책에 자신의 첫사랑인 영호와의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기억은 영호와 달랐습니다. 기억은 상대적인 것이죠. 영호는 그녀에게 책의 내용을 수정하라고 하지만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영호는 과거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읽었던 책을 찾습니다. 영호의 기억 속에서는 영호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을 때 여자가 다가와 그 책에 아이스크림을 흘렀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기억에서는 자신이 <상실의 시대>를 읽으려고 가지고 있었고 영호가 보던 건 만화책이었습니다. 그러니 여자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흘린 건 만화책이었죠. 여자의 기억이 맞았습니다. 영호가 가지고 있는 책 중 아이스크림이 묻은 책은 만화책이었습니다. 그때 영호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이 아니며 모두가 아픈 추억은 아니라는 걸요.
결국 책은 출간되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영호는 차츰 자신의 일상에 파고든 현진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두 사람이 커플이 될 거라는 예감을 남기며 끝납니다.

혼자든 둘이든 행복하면 돼

영호의 말처럼 나와 딱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유일하니까요. 이 영화는 혼자 지내는 것을 강요하거나 커플이 더 행복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혼자도 좋지만 둘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대단히 로맨틱하거나 낭만적인 내용이 아닌데도 미묘하게 감정을 건드립니다. 주변에 솔로 친구가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혼자도 좋고 둘도 꽤 괜찮습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이 행복한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다만 혼자인 게 외롭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혼자라도 단단해질 수 있게 내면의 근육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큰 울림이나 반전은 없지만 잔잔하게 미소를 짓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지금 싱글인 상태에서 이 영화를 봤다면 연애가 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