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낯선 배우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 존경스럽다가 안타깝다가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 ‘안데스설원의 생존자들’은 2024년 1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입니다. 실제 1972년 우루과이 공군 비행기가 안데스산맥에 추락했고 그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실제 우루과이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인지도는 낮은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메이킹 필름 영상을 보니 감독이 의도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낯선 배우들과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배우들을 선발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난영화이기 때문에 기존 작품들에서 캐릭터가 너무 강렬했거나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기존의 이미지를 깨트리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에서 네레이션을 담당한 주연배우 엔소 보그린치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연기도 잘하지만 꽤 잘생긴 외모라서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도약이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16명이 살아남은 72일간의 사투
영화는 안데스산맥 설원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누마의 내레이션이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누마는 뱐호사를 꿈꾸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취업을 앞두고 있던 누마의 친구들은 풋볼 친선경기를 나갈 준비 중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누마에게 함께 칠레 산티아고 여행을 떠나자고 권했고 누마는 고민 끝에 동행하기로 합니다. 작은 공군비행기 안이 시끌벅적했습니다. 여행에 들뜬 청춘과 그의 가족들이 뿜어내는 웃음소리가 비행기 안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순식간에 비행기는 안데스산맥 어딘가에 추락합니다. 이미 추락 순간 세상을 떠난 사람도 여럿이었습니다. 살아남은 누마와 친구들은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힘을 모읍니다. 짐을 풀어 옷가지를 모으고 남은 식량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합니다. 처음엔 금방 구조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희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설상가상 식량도 다 떨어지고 눈보라까지 몰아칩니다. 누마와 친구들은 부서진 비행기 조종석을 찾아 무전을 보내지만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더는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몇몇은 죽은 자의 몸을 먹자고 제안합니다. 그건 살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누마는 끝까지 저항합니다. 이들의 선택을 두고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겁니다. 누마는 다리를 다치고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갑니다. 결국 어느 밤 누마는 자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그 전날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란 걸 느낀 누마는 친구에게 자신이 떠나면 그 몸을 사용해도 좋다는 말을 남깁니다. 눈물이 쏟아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누마는 떠나는 순간까지 희망을 선물합니다. 자신은 이렇게 떠나지만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갈 테니 기쁘다고 말이죠. 남은 친구들은 더 힘을 냅니다. 안데스산맥 너머 칠레를 향해 선발대 두세 명이 걸어갑니다. 수차례 위기를 극복한 후 마침내 그들은 개울가 건너를 지나던 남자에게 잘견됩니다. 그렇게 72일 만에 그들은 구조됩니다. 승무원까지 합쳐서 총 45명 중에 16명이 살아남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희망이 살린 사람들
그들은 먹을 것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들을 살린 건 서로의 온기와 함께라는 희망이었습니다. 끝내 포기하지 않았기에 마침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독은 말합니다. 안데스설원의 생존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닌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영화라고요. 그들이 떠나가는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생존자 16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요.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고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눈에 띄게 야위어 가는 배우들과 실제 안데스설원에 와있는 듯한 추위가 느껴지는 영상미,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믿기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모든 게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힘든 현실을 견디고 있는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